목이 칼칼하고 코가 막히고 몸이 찌뿌둥한 느낌이 오면 독일에서는 한숨이 먼저 나온다. 한국이었으면 동네 내과 가서 30분 안에 약 타서 집에 왔을 텐데, 여기는 그게 안 된다. 독일에서 아프다는 건 단순히 몸이 힘든 게 아니라 멘탈 싸움의 시작이다.
Hausarzt(하우스아르츠트)에 전화한다
독일에서 아프면 제일 먼저 Hausarzt(하우스아르츠트), 주치의한테 가야 한다. 우리나라처럼 아무 병원이나 걸어 들어가는 시스템이 아니고 담당 주치의가 정해져 있어서 거기서 먼저 봐야 한다. 감기 시즌, 그러니까 환절기나 겨울에는 대기실이 완전 전쟁터라서 전화해서 예약하면 오늘은 자리가 없고 이틀 후나 돼야 한다는 말을 듣기 일쑤고 운 좋게 당일에 가도 한 시간, 두 시간은 그냥 기다린다.
이미 아파서 몸이 무거운 상태로 대기실에 앉아있으면 옆에서 누가 기침을 하고 맞은편 아이는 콧물을 흘리고 창문은 닫혀있다. 병 때려가다가 병을 더 얻어오는 게 아닌가 싶은 그 분위기가 진짜로 있다.
일반 감기면 따로 처방약이 없고 조금 심하면 Ibuprofen(이부프로펜) 강한 버전을 처방해주는 정도다. 목감기라서 염증이 확인되면 그나마 Antibiotika(안티비오티카), 항생제를 써주는데 항생제는 Rezept(레체프트), 처방전 없이는 살 수가 없어서 목이 이상하다 싶으면 빨리 병원을 가는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의사는 꼭 이 말을 덧붙인다.
Notaufnahme(노트아우프나메)는 더 큰 모험이다
Hausarzt는 그나마 양반이고 Notaufnahme(노트아우프나메), 응급실은 진짜 다른 차원이다. 교통사고가 나서 충격이 꽤 컸는데 겉으로 피가 안 나고 뼈가 튀어나오지 않았다면 그냥 대기다. 세 시간, 네 시간을 아무리 아파도 겉으로 멀쩡해 보이면 우선순위에서 밀려서 번호표 들고 의자에 앉아 기다려야 한다.
임산부도 예외가 없어서 양수가 심상치 않거나 자궁이 심하게 압박이 와서 불안한 마음에 병원에 가도 배 불러서 불편한 의자에 앉아 세 시간씩 기다려야 한다. 옆에서 번호가 불리는데 내 번호는 아직 멀었다.
Krankenkasse(크랑켄카세), 건강보험이 잘 돼있어서 의료비가 거의 무료에 가깝고 의사들 실력도 좋으니까 독일 의료 시스템이 나쁜 건 아니다. 근데 기다리는 문화는 어떻게 적응이 안 된다. 한국에서 응급실 가면 후다닥 달려오던 그 느낌이 여기선 없어서 이럴 때 진심으로 당장 한국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Apotheke(아포테케)는 진짜 친절하다
그래도 독일에서 아플 때 유일하게 위로가 되는 곳이 Apotheke(아포테케), 약국이다. 독일 약사들은 이 약은 언제 먹고 어떤 증상에 쓰고 이거랑 같이 먹으면 안 되는 게 뭔지를 시간을 충분히 들여서 설명해주는 문화가 있다. 처음엔 독일어로 설명해줘서 반도 못 알아들었는데 지금은 그 시간이 오히려 고맙다.
일반 감기약이나 차, 비타민 같은 건 dm이나 Rossmann에서 사면 되고 처방전이 필요한 약은 Apotheke에서 산다. Antibiotika(안티비오티카) 같은 처방약은 반드시 Rezept(레체프트)가 있어야 하니까 미리 구비해두고 싶어도 못 한다는 게 아쉽다.
아프기 전에 막는 게 답이다
이런 경험들을 몇 번 하고 나면 자연스럽게 결론이 난다. 독일에서 건강 관리는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어서 환절기엔 특히 기를 쓰고 안 걸리려고 한다. 그러다 보니 우리 집에는 겨울 비상 키트가 생겼다.
어른이나 아이나 똑같아서 아이 있는 집은 더 신경 쓴다. 손 자주 씻기고 비타민 챙겨주고 환절기엔 외출 후 무조건 손 씻는 루틴을 만드는 게 결국 제일 현실적인 방법이다.
한국 갔다 오면 약을 쓸어온다
독일 살면서 한국에 갈 때마다 챙겨오는 게 있다. 약이다. 독일 약이 없는 건 아닌데 한국 약이 체감상 더 잘 듣는 경우가 있고, 무엇보다 익숙하다. 아플 때 낯선 약보다 내가 아는 약이 심리적으로도 안정이 된다. 그래서 한국 갈 때마다 캐리어 한 칸은 약으로 채워온다.
독일 살면서 처음으로 건강을 진심으로 챙기게 됐다. 아프면 정말 힘들고, 병원 가는 것도 일이고, 약 구하는 것도 일이라는 걸 몸으로 배웠다. 안 아픈 게 최선이라는 말이 이렇게 현실적으로 느껴진 적이 없었다.
Erkältungstee(에어켈퉁스테) 항상 구비하고,
Vitamin C(비타민 체) 풍족하게 먹고,
한국 갈 때 약 쓸어오고,
옷 레이어링하고, 손 자주 씻고.
독일에서 건강은 선택이 아니라 생존 전략이다.